너는 이제

in #krsuccess3 days ago (edited)

너는 글을 쓰고 있다. 자신의 연주에 깊게 몰입한 피아니스트가 다른 세상에 도달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삐져나오는, 너는 바로 그런 표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퐁퐁 솟아 나오는 감각에 도취된 너의 얼굴 표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린다. 우울하게 푹 가라앉다가 돌연 황홀한 쾌락에 젖은 표정으로 솟구쳐 오르고 아무런 전조 없이 감정도 의식도 없는 텅 빈 눈빛으로 변하길 반복하며 글을 쓴다.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하며 화면에 번호가 뜬다. 앞 번호가 070이다. 스팸이다. 방해금지 모드로 바꾼다는 걸 깜박 잊었다. 흐름은 깨졌고 너는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

이제 너는 멍하니 앉아 있다. 네 표정은 허탈해 보이기도 하고 짜증이 난 것 같기도 하다. 한쪽 입술과 눈이 미묘하게 비틀어지며 인간에 대한 혐오가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너를 도와주고 싶지만.

너는,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 너는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네가 매달 내는 비싼 통신비 덕에 그들은 먹고산다. 휴대폰이 네 책상 한쪽 구석에 놓인 이상 앞으로도 너는 글을 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