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in #krsuccess11 days ago (edited)

아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근 3년 만이었다. ‘헤이트풀 8’을 마지막으로 웬만하면 극장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가지 못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날 바로 옆자리에 앉은 관객이 초반에는 연신 탄성을 지르기에 타란티노 영화의 광팬인 줄 알았다. 그러다 영화가 아직 3분의 1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코를 골기 시작했다. 주변에 빈자리도 없어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고, 중간에 나가자니 극장까지 찾아온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 설마 두 시간 내내 코를 골지는 않겠지, 조금 지나면 멈추겠지 생각하며 영화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꼼짝없이 두 시간 동안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꽤 끔찍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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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는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보는 내내 감탄하며 몰입했고 3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뒷자리 관객이 의자를 계속 툭툭 차서 영화 중간에 비어 있는 옆자리로 옮긴 것만 빼면. 영화가 끝나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뒤를 쳐다보았다. 예상과 달리 학교 선생님처럼 보이기도 하는, 단정한 차림에 조용한 인상을 지닌 60~70대 정도의 여성이었다. 무릎이나 골반이 불편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역시, 내 평화와 안녕을 위해 영화관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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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트래비스 스캇’이 음유시인으로 등장한다. ‘땅땅땅!’ 지팡이로 세 번 바닥을 치며 읊조린다. 3박? ‘오디세이아’가 6음보 운율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실제 고대 그리스 음유시인들이 3박이나 6박으로 시낭송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떠올렸다. 전에 그 공연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너무나도 멋졌다. 달착륙을 다룬 영화 ‘퍼스트 맨’에도 ‘스포큰 워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힙합과 랩의 대부 ‘길 스콧 헤론’의 ‘Whitey on the Moon’이 나온다. 영화 속 미국 국민들의 달 프로젝트 반대 시위 장면에서 한 흑인 청년이 이 곡을 부른다. "우린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백인들은 달에 간답시고 세금 펑펑 쓰고 있네" 노래 내용을 좀 거칠게 압축하면 이렇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가사와 그루브 넘치는 부드러운 랩으로 만들어진 멋진 곡이다.

‘트래비스 스캇’의 시낭송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면서 감탄한다. 와. 이거 정말 멋진걸.

거대한 목마가 해변에 비스듬히 박혀 있다. 꼭 영화 ‘혹성탈출’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무너진 자유의 여신상 같다. 유려한 목마의 곡선, 바다와 하늘을 사선으로 나눈 레이아웃, 그 시각적 아름다움에 또 감탄한다. 그런데 트로이 목마 옆에 한 병사가 앉아 있다. 배우는 앨리엇 페이지. ‘시논’이라는 인물로 나온다.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인 것 같은데? 아마 놀란 감독의 각색이겠지? 이때는 몰랐지만 ‘시논’의 등장은 이 영화를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든 탁월한 장치였다. (이 부분은 큰 스포가 될 것 같아 넘어갑니다.)

사운드 디자인도 너무 훌륭했다. 뻔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실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멜로디가 가미된 타악 위주의 음악. 그리고 단연 압권은 오디세우스가 활을 쏘기 전 튕기는 현 소리. 영화 '더 리턴 (The Return), 2024’에도 오디세우스가 활을 튕기는 소리가 아름답게 등장한다. ‘오디세이’에서는 ‘더 리턴’의 이 장면을 더욱 멋지게 업그레이드한 느낌이다.

로버트 패틴슨(안티노오스 역)의 팬이 되었다.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구나. 저 잘생긴 얼굴로 저런 비열하고 쪼잔한 눈빛과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원작과 다르게 ‘시논’이라는 인물과 연결된다. 정확히는 오디세우스 - 시논 - 안티노오스 세 명의 서사가 맞물리면서 이 영화의 핵심 주제 중 하나가 드러난다.(이 부분도 스포일 것 같아 생략)

드디어 세이렌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놀란은 과연 세이렌의 음악을 어떻게 표현할까. 실제로 음악을 만들까. 역시. 놀란은 세이렌의 음악을 직접 재현해서 제시하는 불필요한(그리고 불가능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시각적인 연출로, 배우들의 행동과 표정 연기로 세이렌의 음악을 관객들이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또 감탄.

키르케가 마법으로 병사들을 동물로 변신시키는 장면. 와. 이런 기법이 가능했구나.

명부에서 죽은 자들과의 대화 장면. 특히 여러 차례의 거짓말로 억울하게 희생된 시논의 이야기. 무시무시하고 처절하고 슬프고 아름다웠다.

아테나 여신으로 등장하는 젠데이아가 1인 2역으로 학살된 신녀 역도 맡았다. 여기서 이 영화의 또 하나 중요한 주제가 드러난다. 오디세우스의 죄의식이 신녀의 얼굴을 한 아테나로 시각화되는 순간, 이 이야기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온전히 인간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원작에서도 오디세우스가 키웠던 강아지가 돌아온 그를 바로 알아본다. 너무 늙어서 거름밭 위에 내팽개쳐진 개가 오디세우스를 알아보고 죽는 장면. 슬펐다. (존윅이 생각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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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이 새롭게 제시한 여러 현대적 각색이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어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 원작의 오디세우스가 지닌 ‘장난기’나, 영웅이라면 여러 여자를 ‘거느린다’는 고대의 서사 같은 건 알맞게 제거되었다. 다소곳이 남편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페넬로페도 현대인의 여성상에 맞게 바뀌어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작과 달리 아들 텔레마코스는 왕이 되고,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함께 서쪽으로 떠난다. 왠지 이 장면에서 이미 오디세우스는 죽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죽었든 살았든, 어떤 결말이든 내가 이 영화에서 받은 묵직한 여운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