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위버멘쉬steemCreated with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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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네이버 글감 검색

저자 :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기존 철학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연 혁명적 사상가

'위버멘쉬' 개념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초월해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 기존의 도덕과 규범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

그의 사상은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심리학, 정치 사상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이 책은 옮긴이가 1878년 출간한 니체의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기반으로 작업한 것이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



진정으로 나를 파괴하지 못한 고통은 결국은 더 큰 힘으로 돌아온다.




'왜 이런 아픔이 내게 찾아왔을까?'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시련이 내 안에 숨겨진 힘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것.




우리는 도덕, 법, 관습, 선과 악 같은 것들을 마치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시대와 환경이 만들어낸 규칙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삶이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살다 보면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온다.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진짜 자유가 느껴지는 순간 말이다.

(...) 익숙함이 주던 안도감이 두려움과 반감으로 바뀌면서 해방이 시작된다.




믿음과 선함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 둬서는 안 된다.

도구처럼 필요할 땐 꺼내 쓰고, 아닐 때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삶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다.

당신이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도덕이 언제나 인간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강자의 힘이 당연하게 여겨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희생, 겸손, 순종' 같은 가치가 미덕으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결국,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노예의 도덕'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도덕을 절대적이라고 믿어버린다는 점이다.

도덕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유일한 진리인 양 맹목적으로 따른다.




사람들은 왜 진실을 말할까?

도덕 때문일까, 양심 때문일까?

사실 그보다 덜 복잡한 이유가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게 훨씬 편하고 덜 피곤하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우리 삶에서도 사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즉각적인 반응이 최선이라 믿지만,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할 때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감정을 견디고 내면을 다스리는 과정이다.

오히려 행동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결국 인생의 고통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

고통을 견디며 의미를 찾을 지, 아니면 그 원인을 뿌리째 없애려고 할지.

어느 쪽을 택하든, 중요한 건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강렬한 감정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에 흽쓸려 판단하면, 결국 후회만 남는다.

감정을 외면하지 말되,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힘을 길러라.




진심으로 말한다고 해서 항상 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진솔함과 진실을 혼동한다.

신앙심 깊은 이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절대적 진리라 여긴다.

그러나 진심이 곧 진실이라는 법은 없다.

때로는 진심이 가장 강력한 착각이 될 수 있다.




진실을 찾는다는 건, 우리가 직접 만들어온 믿음과 환상을 하나씩 벗겨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복수를 꿈꾸는 마음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불씨와 같다.

처음엔 그 불길이 힘이 되어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까지 태워버린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 중 상당수는 실제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믿음과 사회적 기준이 만들어낸 허상일 때가 많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나만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배운 대로 믿고 있는지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 생각이 맞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또한 자기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의 산물일 뿐이다.




아무리 멋진 글이라도, 그걸 듣고 난 뒤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것이다.




사실 '선'과 '악', '죄'와 '미덕' 같은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시대와 문화, 개인의 관점에 따라 계속 달라져 왔다.

(...) 우리가 죄나 도덕적 기준을 고민할 때, 그 출발점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잘못된 기준은 죄책감을 심어주고 스스로를 옥죄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임을 깨닫는 순간, 마음은 훨씬 자유로워진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유명하다.

온갖 재앙이 세상에 퍼져나갔지만, 희망만은 상자 속에 남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희망을 마지막 남은 '보물'이라 여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 희망은 단순한 축복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가장 교묘한 속박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내일을 믿게 하고, 오늘의 고통을 버티게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기보다, 어디에 있을 지 모를 더 나은 미래만 기다리게 된다.

희망은 삶을 버틸 힘이 되지만, 동시에 현재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법이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법은 이상적 정의의 구현이 아니라, 이익과 효율을 고려한 계산의 산물이다.

그러니 법에 대해 너무 낭만적인 기대는 말자.

대신 그 안에 담긴 힘의 관계와 계산을 이해하는 게 현실적이다.




자유의지란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착각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 착각이 우리를 행동하게 하고 삶을 살아가는 추진력이 된다.




'자유의지'라고 믿는 것도, 어쩌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일 뿐일 수 있다.




철학자나 종교인들은 스스로를 몰아넣는다.

겸손과 절제를 강조하고, 자신을 낮추는 삶을 택한다.

단지 신앙 때문일까? 꼭 그렇진 않다.

이런 자기 희생은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족감을 얻기 위한 방식이다.

표면적으로는 스스로를 낮추는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의미와 성취를 누리는 거다.




복종은 때때로 가장 쉬운 선택이다.

복종하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 지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중요한 건 흠 없이 사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것이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나만의 길을 걷는 것이다.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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